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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런던] @Spruth Magers Gallery, Jon Rafman 미디어와 실존, 검색될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걸까?

전시

by 곡물곡물 2023. 4. 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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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uth Magers Gallery, Jon Rafman, 그리고 미디어

토요일의 갤러리 투어 중 Spruth Magers Gallery의 현재 전시는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지금 선보이고 있는 작품은 Gretchen Bender의 비디오 아트 작업과 Jon Rafman의 페인팅과 비디오 작업이다. 1980년대의 텔레비전, 자본주의와 광고를 담아 내고 있는 Bender와 현대, 90년대 이후의 인터넷 문화와 기술을 탐색하는 Rafman을 연속으로 보면 그 안에서 현대 미디어에 대한 내러티브를 읽을 수 있다. 


Jon Rafman의 작가 소개에 '유사인류학적' 작업이라고 설명돼 있는 것이 그의 작업을 재미있게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술과 커뮤니티, 그 안이 상실, 갈망과 판타지 등을 다룬다는 그는 이미지는 혼잡하고 즉물적이다.
You Are Standing in an Open Field 시리즈는 키보드, 게임기, 카세트 비디오 등과 식재료, 책과 온갖 가재도구 등을 풍경을 가로지르며 배치한다.
기괴하면서도 누군가의 컴퓨터 책상 앞과 같은 친숙함을 주는 작품은 소비주의, 기술의 사용과 기술에 의한 침식의 기록이자 폭로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만 카메라가 등장하면서부터 현대 미술은 개념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큰 도전을 받아왔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실험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철학자와 평론가들은 예술에서 재현과 표상에 대하여 설명하게 되었다.
무엇부터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예술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미디어 역시 이 경계에 혼란을 더 한다. 미디어는 시각 예술이 그러하듯 대상을 재현, 조사하고 기호를 생산한다.
미디어는 메시지고 메세지가 아닌 아트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뉴스와 티비 시리즈, 인터넷 밈을 보고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때로 예술이고, 광고도 어느 언저리에서는 예술이 된다.
또한 텔레비전의 등장 이래로 대중 매체는 그 자체로 '현대'의 표상이자 현상이므로 예술은 미디어를 탐색했다.
예술은 기록하고, 고발하고, 중립적이고 또 정치적이고, 힘이 있으므로 미디어와 다르지 않다.
 

Punctured Sky, 온라인 미디어

Jon Rafman의 전시 Ebrah K'dabri는 미디어를 대상이자 표현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매체와 예술의 관계, 그리고 대중매체와 현대인의 관계를 드러낸다.
갤러리 지하에서 상영되고 있는 Punctured Sky는 추억 속의 온라인 게임을 찾아나가는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기괴하면서 특징적인 캐릭터와 미장센을 보여준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추억과 기억에 대한 고찰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작품 속에서 나는 흥미로운 질문을 발견했다.
현대에서, '검색될 수 없음'은 무엇을 뜻할까? 검색 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작중에서 화자는 친구와의 만남에서 어렸을 때 하루종일 플레이하던 Punctured Sky라는 게임을 기억해내고,
친구가 '분명히 아주 오랜 시간 플레이를 했는데 어디서도 그 게임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화자 역시 이 게임에 대해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지 못 한다.
작품은 이 과정에서 여러 검색엔진을 돌아다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답을 얻으려는 화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독백은 단 한 번의 검색만으로도 알고리즘에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커뮤니티에 질문을 하면서 화자는 어디서도 이 게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기억이 조작 당한 것 같이 느낀다고 말한다. 
 
이 작업은 당대를 살아가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의 행동을 재현한다.
주인공이 사건을 탐색해가는 일련의 과정은 현대 정보, 지식이 대부분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나는 자주 가게를 눈 앞에 두고도 휴대폰을 켜서 영업 시간을 확인하고, 점원 옆에 서서 제품 정보를 찾아본다.
 
우리는 기억을 온라인에 의탁하고 있는 걸까?
선명히 기억하고 있지만 검색 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한다.
아마 나는 잊어버릴 지 모르지만 알고리즘은 나의 검색어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최근 99년, 2001년 생과의 대화에서 이들이 단 한 번도 종이 사전을 1차적인 단어 검색 수단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기 전에 쓰던 '전자사전' 이라는 단어도 이들에겐 생소한 것으로 나이 많은 친족의 집에서 어렸을 때 본 적이 있는 정도의 기기로 남아 있었다. 
현대인, 특히 나와 같은 (소위) 밀레니얼 세대부터 좀 더 어린 세대들은 MZ,
혹은 디지털 네이티브로 명명되며 디지털 미디어 활용으로 특징 지어져 왔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그 보다 더 중대하게는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모든 미디어는 빠르게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낸다.
직접적으로 인터넷에서 찾는 것이 아닌 정보는 다른 누군가가 인터넷으로 본 것이며,
텔레비전이나 책 같은 보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내용은 이미 온라인에서 열람 가능한 정보로 변환되었다.
일상에서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온라인 미디어를 열람하고, 미디어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은 틀린 것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다시 Rafman의 작품으로 돌아오면, 화자는 한 커뮤니티 유저의 연락을 받고 또다른 게임 (GTA 5) 안에서 정보를 얻고 다크웹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GTA 안에서 갑작스럽게 다른 플레이어의 습격을 받은 주인공은 그가 총창으로 게임 속 벽에 주소를 남겼음을 알게 된다.
주소지에 도착한 그는 웬 매트리스 판매처에 도착하고 괴상한 사람들이 가득찬 뒷 공간의 화장실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지만 경찰을 만나고 결국 Punctured Sky에 대한 내용은 찾아내지 못 한다.
그리고 그는 가장 처음 이 게임에 대한 질문을 한 친구가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병원 침대에 앉은 친구는 아주 은밀하게 자신이 게임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다며 주인공의 귀에 속삭인다.
얼이 빠진 채로 나온 주인공은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어렸을 때 하루종일 하던 게임 기억나?
동생은 대답한다. 뭔진 모르겠지만 켜지지도 않은 모니터 앞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기억나.
 
작품은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디지털, 기억과 소유

 
나는 한동안 디지털로 대체, 아니 변환되는 인간의 관습, 행위 또 기억에 대해 탐구했는데,
그 중 하나의 꼭지가 정리를 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둔 다음 버려라" 하는 명제였다.
미니멀 라이프 실천을 위해 일본의 유명한 정리 전문가가 제시한 방법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는 것은 물건을 다른 의미로 소유하는 방법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사진은 디지털 기기 속에, 클라우드 속에 남아있고 이따금 '4년 전 오늘'이라는 알림으로 우리의 기억을 일깨운다.
 
그럼 사진이 없다면?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클라우드 액세스를 할 수 없다면 - 우리는 디지털화된 소유물과 기억을 잃는 것일까?
 
Rafman의 Punctured Sky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텅빈 화면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걸까?
아니면 누구도 기억하지 못 하기 때문에 없었던 일이 된 걸까?
미디어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된 걸까?
 
현대인의 관계는 비단 우리 주변인에서 그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 혹은 미디어 그 자체로도 나아간다.
작품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기억을 탐구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 지점을 생각해보면 아주 흥미롭다. 
 
최근 서울에서 얼룩말이 탈출했을 때, 한 대학생이 커뮤니티에 쓴 글이 화재였다.
방금 얼룩말을 집 앞에서 봤는데 자기가 본 게 맞냐는 질문이었다.
댓글에 어딜 찾아봐도 그런 뉴스가 없다, 혹시 조현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지 않겠냐-하는 이야기가 올라왔다가
뉴스가 보도 된 이후에 사과를 하는 재미있는 해피닝이었다.
얼룩말을 본 사람이 커뮤니티 속에 없다면, 뉴스 보도가 없다면
얼룩말은 없는 것이다.
 
-
오늘도 몇 개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알림이 온다. 
몇 년 간 찍은 같은 시기에 사진을 보라고. 
알림을 보고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이거 도대체 뭘 찍은 거야?
사진이 온라인에 있고, 미디어에 있고
찍은 나는 기억하지 못 한다면,
사진 속 대상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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