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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Film Festival] Jeong-Sun - Jeong Jihye

삶의 잡기 Miscellaneous

by 곡물곡물 2022. 10. 1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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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
동네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정순은 세월에 억척스러워질 법도 한데 그 이름처럼 정순하게 살아간다. 그런 정순에게 공장 동료이자 또래인 영수가 다가온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며 둘만의 은밀한 관계를 즐기고, 영수는 그 관계를 휴대폰 카메라로 담는 것을 즐기는데….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평점
10.0 (2021.01.01 개봉)
감독
정지혜
출연
김금순, 윤금선아, 조현우, 김최용준
  • Korean with Eng Sub
  • Personak Review: ★★★★



런던 필름 페스티벌에서 본 또 다른 영화는 정지혜 감독의 정순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미묘한 불편함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시놉시스를 통해서 간략한 내용은 알고 갔는데, 시놉에 "N번방에서 보이듯, 해당 작품은 조심스럽게 여성의 몸에 대한 지속적인 착취를 다룬다" - Drawing on the recent 'Nth Room' case - an horriifc crime involving sexually exploitive filming and cybersex trafficking in South Korea, it sensitively explores the universal probelm of the continuing exploitation of the female body' 라고 언급이 되어 있어서, 좀 더 관련된 내용을 예상했는데
실제 N번방과는 같지만 다른 문제로, 해당 사건이 이슈가 된 것은 촬영이 시작된 뒤라고 한다.  

정순은 다소 폐쇄적인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중년 여성의 동영상이 퍼지는 사건에 대해 다룬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볼 법한 남성들의 보이지 않지만 공고한 카르텔이 있다.
정순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이 사건에 대처하는지, 그리고 그 주변의 또다른 주변인들이 어떻게 그를 보호하고, 또 반응하는지를 볼 수 있다.

상영 전, BFI의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인 조현진 프로그래머의 간략한 영화 소개와 한국에서 온 감독, 촬영감독 그리고 도윤 역의 배우의 인사가 있었다.
정지혜 감독은 '정순'이라는 이름을 두고, 한국의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흔한 '정직하고 순종적으로' 라는 뜻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불리면서 살아간 정순씨가 어떻게 사건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아달라고 한다.정순은 혼자 아파트에 살며 지역에 있는 공장에서 일한다. 공장은 지역 사람들의 일터이자 그의 사회 생활에 중심으로 친구, 동료를 만나고 그들과 주말에 등산을 하고 밥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공장의 감독관 역을 맞고 있는 도윤은 어리지만 포악한 관리자로, 거칠게 말을 뱉으며 '제발 시키는 대로 좀 하라'고 소리 지른다. 동시에 그는 윗선에는 잘 하는, 사장님의 말을 전달하는 직책으로 권력을 갖는다. 공장에는 그를 중심으로 한 미묘한 권력의 사다리가 있다. 그가 마음에 들어하는 여성 직원은 편한 자리로 배정되고, 그와 헤어진 직원들은 그만 뒀다. 연배가 많은 직원들도 도윤의 눈치를 보고 그와 친한 남자 직원들은 그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이양받는다.
정순은 전형적인 50대 초중반의 한국 여성이다. 나도 살면서 몇 번 만났을.
서글서글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남에게 관심이 많고 또 남의 눈을 신경 쓰는. 공장의 젊은 여직원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화장을 하는 걸 두고 '화장을 뭐하러 그렇게 진하게 하냐,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라고 무안을 줬기 때문이다. 정순에게는 악의가 없었을 것이다. 으레 하는, 그도 어딘가에서 들었을 것이고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몇 년 전에는 정말 문제가 아니었을 문장이다. 그는 폐차장에서 일하는, 이제 곧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딸에게는 너도 화장 좀 하고 어두운 옷도 좀 그만 입으라 한다.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면 어쨋거나 잘 신경써서 하라고, 결혼 준비도 아무 거나 하지말고 잘 보여질 만한 것들로.
딸은 남의 눈 좀 그만 신경쓰라고 하며 정순과 투닥인다. 공장의 불합리함에 크게 문제를 가지지 않고, 몸 좀 사려야겠다고 하지만 도윤의 불합리한 사건에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면서 크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마는, 억척스러움과 순종적임 사이 어디쯤 위치한 그런 '아줌마'다.
정순은 같은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영수와 만남을 갔게 된다. 영수는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다 무릎을 다쳐 이 지역으로 오게 된 사람으로 '노가다 한 사람치고 얼굴이 잘 생긴' 중년 남성이다. 영수가 일시적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 여관에서 나올 때마다 정순은 옷깃으로 얼굴을 가리고 종종 걸음친다. 아침이면 보는 눈이 많아서 항상 밤 늦게 나와 집에 가려고 한다.

그와 같은 차를 타고 출근한 날, 공장의 누군가가 그들을 보고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정순과 영수를 보고 쑥덕거린다. 도윤은 영수를 보고 '아저씨 이제 무릎만 아니고 허리도 좀 신경 써야겠다'며 성적인 암시를 하는 농담을 가볍게 하며 히히덕 거린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소문이 나는 것이 신경쓰인 정순은 영수에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고...'하고 말을 꺼냈다가 영수가 자신과 만나는 게 부끄러운 거 아니냐고 하면서 싸우고 만다.

여기까지 아직 크게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이 없다. 모든 화면은 일상적이다. 공장에서 누가 소리를 치거나 수군거리거나, 딸과 싸워도, 우리는 이것을 아직 사건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조용한 지방 도시의 약간 처지는 느낌, 대화의 공백, 등장 인물들 사이의 침묵 같은 잔잔함 속에서
영화는 조심스럽게 등장 인물과 그 배경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은 아주 평범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있다.나는 이런 느낌을 '따가운 공기'라고 부르는 데, 정순 속 공기는 꼭 깨진 유리병을 치우고 남은 자잘한 부스러기처럼 거슬리게 긁힌다. 극을 보는 내내 뭔가 손으로 쥐고 비틀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이 영화에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순간은 화해하기 위해 정순이 영수의 여관방에 가면서 시작된다. 정순은 속옷만 입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영수는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는다. 이 전에는 하지말라고 피한 정순이지만 이 번에는 그러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방금 화해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도 그 순간에 너무 즐기고 있기 때문에, 혹은 어쩌면 이제 그들 사이에 조금 더 신뢰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다음날 공장에서 영수는 담배를 피며 도윤의 무리를 만난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뭔가를 돌려보며 '영수 아저씨한테도 보여주자, 아니 아저씨는 너무 순진해서 안 돼-' 따위로 시시덕 거린다. 영수는 공장의 권력 체계에 순종으로 굴지만 이미 자존심이 많이 구겨진 채다. 도윤은 그를 두고 성적인 농담도 스스럼없이 하고, 한 번은 여자 친구가 없느냐, 여자 친구 비슷한 그런 건 없느냐며 육체적인 관계를 물어보다가 '그래 여기서 일하는 데 그럴 돈이랑 시간이 어디있냐'하고 영수를 낮잡아 본다.
영수는 도윤의 기를 눌러주고 싶은, '어린 놈의 새끼'에게 쓴 맛을 보여주고 싶은, 그리고 그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욕구를 느꼈을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지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뭐였는지는 진짜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영수는 그들에 동영상을 보내준다. 그 동영상은 메신저를 타고 도윤과 친한 공장의 무리부터 시작해서 지역 곳곳에 퍼진다.
뭔가 불안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 정순은 '아무 일도 아닐거야' 하며 혼잣말을 되뇌이고 영수는 연락이 안된다. 다음 날 아침 사실을 먼저 알게 된 정순의 친한 동료는 그 여자애들한테 크게 화를 내고 있다. 정순은 그 핸드폰을 뺏어들고는 실상을 확인하게 된다. 큰 충격을 받고 거리를 헤매다가 경찰서에 간 정순을 '치매 걸리신 분'으로 경찰관이 오해할 지경이다. 딸 유진이 엄마를 데리러 오지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화를 내고 회사로 돌아갔다가 그가 일하는 폐차장에서 돌고 있는 영상을 보고 집으로 뛰쳐간다.
정순은 집에 틀어박힌다. 유진이 대신해서 사건을 접수하고 당분간 정순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집으로 들어온다. 유진은 집에 와서 다 벽으로 돌려진 액자를 보고 다급하게 집에 있는 모든 칼붙이를 챙겨서 나간다.
유진은 남자들끼리 모여서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곳마다 가서 뭐 보냐며 핸드폰을 뺏어 들고 호통을 치다 사과를 하기도 한다. 까칠하고 강단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그는 남자친구한테, 결혼을 미뤄도 된다- 나와 결혼하는 게 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나- 말하며 울다가도 아니 괜찮다고 하고 짐을 마저 싼다.
처음에는 경찰서에 가지 않고 있던 정순에게 영수가 찾아온다. 그는 사과하러 왔다고 하면서, 금방 잠잠해 질 것이다, '우리'도 잘 헤쳐나가야 되지 않겠느냐, '우리 둘 다'라고 말하면서, 근데 빨간 줄 그이면 일하기도 힘들어 진다며 아마도 진짜 용건일 얘기를 꺼낸다.
세차게 문을 닫은 정순은 다음 바람쐬러 가자며 위로를 해주러 온 친구들에게 유진과 함께 경찰서에 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딱히 사이다라고 할 만한 구석이 없다.
정순은 법정까지 가지 않고 합의해준다. 유진은 거기에 답답해 화를 내며 엄마가 그렇게 해줘봤자 그 사람들 하나도 안 고마워한다, 호구로만 본다고 소리를 지른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가만히 좀 있으라는 유진의 말에 정순은 극 중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며, 내 일인데 왜 나한테 가만 있으라고 하느냐, 그 인간이랑 놀아난 것도 영상을 찍은 것도 나인데 왜 내가 못 하게 하냐며 울부짓는다.
싱크대 앞에 주저 않아 '엄마-' 하고 엉엉 우는 이 지점이 클라이막스라면 클라이막스다.

정순은 공장에 나가지 않고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한다. 도로주행을 하는 그 앞에 영수와 도윤 무리가 같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서로 도윤이 강요를 해서 보여줬니, 영수가 자발적으로 보여줬니 하면서 엊갈린 진술을 한 그들이지만 이제 영수는 그들의 무리에 잘 녹아든 것처럼 보인다.
홀린듯이 영수의 뒤를 쫓아가던 정순은 여관 앞에 노숙자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넋 나간 듯이 걸어나온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누가 볼까 얼굴을 가리던 여성은 이제 없다.
다음날 정순은 마치 아무렇지 않게 공장에 나간다.
고구마를 까먹으며 트러블을 일으킨 직원들에게도 너네도 먹을래? 한다. 당황한 것은 도윤과 영수다.
도윤은 예상치 못한 등장에 간단한 작업을 시키고 돌아선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정순에게 도윤은 '그럼 일단 있어봐, 쉬고 있어'라 한다. 정순의 예의 그 어쩔 수 없이 튀어 나오는 말을 하는 태도로 '얘 웃기는 애네, 왜 일을 하러 왔는데 쉬고 있으라고 해'하고 이야기하자 도윤은 '그냥 시키는 대로 가만히 좀 있어'라고 강압적으로 말한다.

정순은 그대로 공장에 물건들을 패대기 치다 작업장 위로 올라가서 동영상에 찍힐 때 했던 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그는 나체는 아니지만 그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체라고 하더라도 그는 무엇도 죄짓지 않았다.
부끄러울 짓은 사실 어디에도 없었다.
영수는 그 앞에 와 그만하라고 하고 정순은 영수를 거칠게 넘어뜨리고 목을 조른다.
도윤은 망가진 작업물들을 걱정하고 정순은 물어줄게, 어차피 돈이면 다 보상되잖아 하고 공장을 해집어 놓는다.
그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 장면은 운전면허를 딴 정순이 유진과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이다.
유진이 간단히 운전 연수를 하며 농담을 나누고 모녀는 잔잔하게 웃는다. 정순은 이제 누가 차를 태워주지 않아도 된다.  

-
정지혜 감독은 불편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지만 아주 불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상적이라서 불편한 건가?
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내용에 도윤과 영수는 없다.
영수는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지만 도윤보다도 오히려 서사가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몰라도 된다.
가해자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사연없는 사람없어도 사연있는 사람의 죄는 죄가 안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순이 디지털 성범죄에 연류되었다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나는 궁금해졌다.
왜 감독이 중년여성을 이 작품의 중심이 되게 만들었는지. 나의 편협함이지만 디지털 범죄는 2,30대 혹은 10대의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영 후 질의에서 감독은 디지털 성 착취가 어떤 특정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된 것 같은 식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작 중 정순의 나이대에 여성들과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이들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 또 하나는 클라이막스가 (내가 느끼기에) 정순이 공장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이 아니라, 딸이 유진과 이야기하다가 울분을 토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의 일은 절정이 지나고 따라오는 결과다. 이
영화에 사이다가 없듯이, 사건이나 캐릭터가 크게 전환되는 지점이 없다.
정순은 그냥 운전을 하게 된 것 뿐이다. 감독은 질의 중에 이 것에 답변이 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이 사건을 통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주체성이나 삶을 이끌어 가는 능력은 계속 정순 안에 있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그 자신이 모르고 있었을 뿐.
영화가 끝나고 있었던 질의에서 다른 흥미로운 부분을 하나 꼽자면, 한 관객이 사건 이후 정순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했냐고 하는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다.
감독은 '중년 여성'의 감정을 묘사했다기 보다는 해당 사건을 겪었다면 어떤 인간이든 보여줄 수 있는 우울함이나 상실감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또 영화 정순의 한국 반응에 대해서 묻는 관객이 있었는데 - 감독이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의 이야기를 하며 현재 한국에서 조명 (재조명) 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반응을 많이 얻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된다고 하며 영화의 상영이 끝났다.

굉장히 활발한 Q&A를 통해서 영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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