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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비엔나] Geschlossene Gesellschaft - Jean Paul Sartre / 닫힌 방 - 장 폴 사르트르

공연

by 곡물곡물 2022. 11. 27.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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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공연과 오페라와 발레를 보러 비엔나에 왔다.
사실은 겨울의 차고 축축한 공기가 잘 어울리는 도시를 찾아서,
속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왔다.

Burgtheater


도착하자마자 본 극은 사르트르의 Geschlossene Gesellschaft (Closed society or No exit, 원제 Huis clos) 국문으로는 닫힌 방이라고 하는 작품으로 사르트르의 희곡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Burgtheater에서 상연되는 것을 봤는데, 독어로 공연되고 극장에서 제공하는 프롬프터 앱을 통해 영어 자막을 봤다.
내가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고 느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조리극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배경 자체가 문도, 창도 없는 영원히 계속되는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배경은 'Hell'로 밝혀지면서 극 중 인물이 지옥에 있는 이유, 삶과 죽음에의 대비,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욕망 등을 밝혀 내고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극 중 대사를 통해 시선, '본다'는 것을 다루고 또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사르트르의 사상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 두 남자가 객석에서 텅 빈, 무채색 일색의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놓여있는 - 말 하자면 말이 되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온다.


웨이터 -라고 해석되는- 인물과 Joseph Garcin이다. Garcin은 방을 둘러보며 이것 저것 질문을 하는데, 방에는 창도 거울도 없다.
자신을 볼 필요가 없고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 필요도 없는 공간.
Garcin은 칫솔은 주냐고 물어보고 웨이터는 그 물음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 닦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는 육체적인 필요성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대하 이야기 같다. 또 Garcin은 빵칼을 보며 여기에 빵이 있냐고 묻는데, 당연히 빵은 없다.
이러한 문답의 장면은 부조리극 그 자체인데 보면서 인간과 세계와의 연결성, 그리고 도구와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됐다.
마침 비엔나에 오며 비행기에서 읽었던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분석에 순수한 물질성의 도구는 없으며 오로지 인간과 도구의 관계만이 있을 뿐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극 중의 공간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사물의 조합이다.
벨을 누르면 웨이터는 오지만, 벨은 작동할지 하지 않을지 알 수 없고, 벨을 누르지 않아도 웨이터는 온다.
이후 Inez와 Estelle이 방으로 들어온다.
Inez는 Garcin을 보고 처음 고문관이 아니느냐 질문하고 - 이내 우리들이 왜 여기에 같이 갇히게 된 줄 알겠다. 여기는 고문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을 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문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 한다.
그녀의 말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모두 죽었으며 어떤 사후세계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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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Inez를 제외한 둘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지옥행을 부정한다.
Garcin은 자신들이 서로의 고문이라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침묵 속에 앉아 있자고 하고 극은 정말 침묵으로 들어간다.
배우들은 건전지가 빠진 장난감처럼 한동안 앉아있다.
그러고 더이상 그럴 수 없다며 극이 계속되는데 Estelle이 자신의 거울이 흐려져 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패닉한다.

이 부분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은데
Estelle이 자신이 보이지 않으면 자기가 존재하는 지 아닌지 확실할 수 없다고 하며 불안해 한다.
그러자 Inez는 자신이 거울이 되어 주겠다며 가까이 다가와서 자기 눈동자 속의 반사를 보라고 하며, 또 Estelle이 어떻게 보이는지 하나하나 말해준다. 입술이 번진 것 같다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선을 따라 그리라며 인도한다.
그러다가 Inez는 그 뺨에 난 거 여드름이냐는 말로 Estelle을 놀래키는데, Estelle이 자신이 아니라 Garcin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에 화가 나
거울이 이제 거짓말을 하게 됬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인간은 반사체없이는 자신의 얼굴을 결코 볼 수 없다.
타인의 시선 안에서만 존재하는 나.
그 타인이 나의 생김새에 대해 대해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상황이 전개되면서 세 명의 관계성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몰아 세우는 지 알게 된다.
Inez는 Estelle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그녀가 Garcin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오직 그가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소리친다.
Estelle은 Garcin에게 성적 어필을 계속하고, Garcin은 둘 다에게 관심이 없다.
Estelle은 등장하자마자 Florence라는 생전 연인을 찾는데, 그녀가 새로운 남성을 만나 자기가 살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미쳐버릴 지경이며, Inez에게 말한 것처럼 남자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Whorrrreee이라고 소리지른다.
Garcin은 바람을 피우고 아내에게 냉담하며 탈영하다 사살당했고, Inez 사실 사촌의 아내인 Florence를 유혹한 것이며 사촌은 트램에 치여죽고 Florence는 Inez와 동반자살을 시도, Estelle도 불륜을 저지르고 태어난 아이를 호수에 빠뜨려죽였고 상대는 자살했다 하는 사실이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드러난다.

결국 Garcin은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이 때 이 희곡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사 "Hell is other people"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다.
셋의 상호작용은 말하자면 서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의 현현으로 성삼위가 존재한다면 이건 거의 악의 삼위일체랄지.
바람 피운 것에 대한 죄책감에, 또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싶어하는 Garcin을 계속 유혹하는 Estelle, 타인, 남성으로 자신을 정의하고자 하는 Estelle이지만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Garcin, Garcin의 유약함을 보여면서 Estelle을 통제할 수 없고, 남성이기에 남성을 원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는 Inez.

결국 문은 열리지만, 그들 중 누구도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다시 문이 닫힌다. 그리고 왜 아까 나가지 않았을가 하는 인물들의 후회로 마무리 되는 극.



닫힌 방이 난해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또한 나는 극과 프롬프터를 따로 봐서 극을 영어로 보거나 한국어로 보는 것 보다 매끄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메시지, 아니 극이 질문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하면 상당히 명확하고 현대극으로서 충분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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