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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런던] Calmer @56 Brook Street

전시

by 곡물곡물 2022. 5. 10.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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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er

calmer 이벤트 장과 조명

지난 주, Illuminate Productions에서 만든 Calmer라는 경험형 이벤트에 다녀왔다.
이벤트 이름에서 제시하듯이 이완하고 릴렉싱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 테마다. 15분 간의 조명과 오디오를 이용해서 감각적인 경험을 준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5파운드라는 입장료를 받는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값싼 경험이고 기획자나 디자이너 중 색, 사운드, 소품, 공간의 마감 등 무엇 하나 이해한 사람이 있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지금 딱히 '전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전시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기를 쓰는 이유는, 오히려 어떻게 돈을 줘도 안 갈 것 같은 행사에 내가 가게 되었는지, 마케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시 내용

본드스트릿(Bond Street) 인근에 갈 일이 생겨 가게 되었는데, 장소는 메이페어(Mayfair)에 있는 구 비달사순의 본사라고 한다. 이 모든 경험의 요소 중 그나마 가장 잘 된 것이 있다면 공간 자체와 거기에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다. 우선 공간은 마치 의료용 클리닉 같은 느낌의 건물에서 흰 색 가운을 입은 도슨트라고 할지 안내자들이 있다. 이후 그들의 안내에 따라 윗 층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마치 치과나 마사지 스파를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에서 뭔가 기분을 환기하거나 릴렉싱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어두운 공간에는 3개의, 치과에서나 볼 법한 의자들이 놓여 있고 관객은 입장해서 그 위에 눕는다. 안내를 해준 사람이 얇은 흰색 시트를 하나씩 덮어주고 15분의 빛과 소리를 통한 이완의 시간이 시작된다. 원색의 파랑, 분홍, 주황, 빨강 따위가 간접 조명으로 방 전체를 뒤덮는다. 방에 가득찬 미스트가 시야를 좀 더 편안하게 하지만 '진정'과는 관계가 먼 색의 조합들이다. 소리는 앰비언트나 새 소리, 바람 소리, 클래식 등이 뒤섞여서 나오는데, 하나의 소리가 지속된다기 보다는 색이 바뀔 때 소리도 함께 바뀐다. 스피커는 3D 오디오 효과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으로 소리가 좌우 앞뒤로 움직이면서 생생하게 흘러나오는데, 오히려 이 고급 설비가 모든 감각으로부터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관객은 의자에 반쯤 누워 천장을 쳐다보며 빛과 소리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본다. 천장의 환풍구는 a4 용지따위로 조악하게 가려져서 팔락거린다. 눈은 어둠에 익숙해지고, 자꾸 반쯤 떨어진 테이프, 모서리에 대충 있는 의자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15분이 지나고, 안내인이 들어와 밖으로 다시 안내된다.
정말 15분이나 지나갔다는 것이 이 체험에 가장 놀라운 지점이고, 이 설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15분이 얼마나 짧은지, 얼마나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이 시간이 흘러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케팅? 홍보? 대체 왜?

그럼 대체 이 이벤트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팔리게 만들었을까?

*채널

나는 우선 Art Rabbit을 통해서 보게 됐다. Art Rabbit은 런던, 뉴욕, 파리 등 다양한 메트로폴리탄 도시에서 서비스되고 있는데, 근처에 있는 전시, 아트 관련 행사를 안내해 준다. 독립적인 갤러리 뿐 아니라 뮤지엄, 국제적인 상업갤러리 등의 자료도 업데이트가 되어 있고, 아트 관련 행사를 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홍보 플랫폼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갖추고, 파급력있는, 또 올바른 관객들이 있는 매체를 선택한 것이다.

* 카피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행사의 상세 설명과 그 광고 카피였다고 본다. '치료 효과가 있는 것에 영감을 얻어' 따위의 말로 시작하는 행사 설명은 궁금증을 충분히 유발시키고 또 예술로 재해석된 어떤 전문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15분 동안의 슬롯을 'exclusive'하다고 표기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제한된,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방문자 후기 (진짜 인지는 알 수 없는) 아래에 따로 표기해서 타인의 입을 빌려 행사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 카피는 최근의 경험/체험 중심의 아트 시장의 경향을 아주 잘 집어내고 있다고 본다.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몰입형, 체험 가능한 멀티미디어 전시가 계속해서 인기를 끌어왔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Teamlab의 전시라던지, 반 고흐, 클림트, 모네 등도 다 몰입형 전시로 크게 성공했다. 이런 전시들은 비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을 투어하면서 지속적으로 인기를 끈다. 이러한 공간 자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방문자가 그 일부가 되는 형식이 최근 변화하는 주요 관객의 나이, 추구하는 관람 형식과 관련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추론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지나면서 일방적인 소통보다는 쌍방향, 스스로 참여하는 형태를 선호한다. 또한 소셜미디어, 유투브 등 자신의 일상을 나누고 또 스스로 콘텐츠를 다시 생산한다. 이런 점에서 Calmer는 아주 효율적이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충분히 독특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 그들이 티켓 사이트에 업로드해둔 사진과 더불어 카피에 쓰여 있는 '음파가 당신을 씻어내릴 것이다 (Sonic waves wash over you)라던지, 'a multi-sensory cocoon' 등의 묘사는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또한 타인에게 공유 가능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이런 '치유', '릴렉스'의 키워드 역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웰빙','힐링', '소확행' 등이 끊임없는 마케팅 포인트이듯 현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어떤 특권적인 경험이다. 이들은 빛이나 청각적인 요소가 건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소비자의 니즈를 자극한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New Yorker에서 이런 몰입형, 체험 전시의 인기를 설명하는 기사 중 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이 자연 환경과 분리 되면서 대자연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초월적인, 숭고의 경험에 대한 결핍이 있고, 이를 멀티 미디어 전시가 채운다는 것이다. 거대한 스크린과 기술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으로부터.

Calmer의 설치 요소들은 이 지점들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 했다. 그러나 그들이 묘사하는 이벤트는 충족시켰고 또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알맞은 곳에서 말했고, 또 런던에서 가장 바쁜 지구 중 하나인 Mayfair(메이페어)의 중심에서 이 가짜 '치유'의 경험은 더 재미있게 보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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